대에이전트 시대에 다시 읽는 Aggregation Theory
2015년 Ben Thompson은 인터넷이 시장의 권력을 뒤집는 방식을 하나의 이론으로 묶었다. 이름은 Aggregation Theory였다.
전통 시장은 공급자, 유통자, 소비자로 구성된다. 인터넷 이전에는 유통이 희소했다. 신문은 인쇄기와 배달망을 가졌고, 방송사는 주파수와 편성권을 가졌으며, 호텔은 객실뿐 아니라 낯선 도시에서 믿을 수 있는 숙소라는 신뢰를 가졌다. 유통자는 그 힘을 이용해 공급을 거꾸로 통합했다.
인터넷은 배포비용과 거래비용을 거의 0으로 만들었다. 공급자를 소유하지 않아도 전 세계의 공급을 한곳에 모을 수 있게 됐다. 그때부터 시장의 중심은 공급에서 최종 사용자로 이동했다. 가장 좋은 경험으로 사용자를 모은 회사가 공급자를 불러오고, 늘어난 공급이 다시 경험을 개선하는 순환을 만들었다.
Google은 웹페이지를, Amazon은 상품을, Uber는 차량을, Airbnb는 빈방과 신뢰를 모듈화했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웹페이지나 자동차, 객실의 소유권이 아니었다. 사용자가 무엇을 찾고, 고르고, 거래할 때 가장 먼저 찾아오는 관계였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Aggregation Theory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이 구조가 무너졌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한 층 더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검색은 선택지를 줄였지만 선택까지 하지는 않았다
인터넷의 Aggregator는 인간 앞에 더 나은 선택지를 배열했다. Google은 링크를 정렬했고, Amazon은 상품을 비교했으며, Booking.com은 호텔을 가격과 평점으로 나열했다. 사용자는 플랫폼이 만든 순위를 믿었지만 마지막 판단은 직접 했다.
그래서 사용자 경험의 중심에는 화면이 있었다. 검색창, 피드, 상품 목록, 별점, 리뷰, 장바구니가 경쟁의 전장이었다. 공급자는 그 화면에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검색 최적화와 광고, 가격 할인, 리뷰 관리에 돈을 썼다.
AI Agent는 이 관계를 바꾼다. 사용자가 “도쿄에서 신주쿠와 가까우면서 조용하고, 늦은 체크인이 가능하며, 총예산 80만 원 이하인 호텔을 예약해줘”라고 말하면 Agent는 링크 열 개를 돌려주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조건을 해석하고, 후보를 비교하고, 숨은 비용을 확인하고, 필요하면 예약 단계까지 진행한다.
OpenAI가 2025년 공개한 ChatGPT agent도 이 경계를 분명히 보여줬다. 웹을 탐색하고 필터를 적용하며, 식재료를 구매하거나 양식을 작성하는 것처럼 조사에서 행동까지 이어지는 작업을 수행한다. 중요한 행동 앞에서는 사용자 확인을 받지만, 그 확인 사이의 탐색과 비교와 절차는 Agent가 맡는다.
여기서 사용자가 위임하는 것은 클릭이 아니다. 무엇이 나에게 좋은 선택인지 판단하는 과정이다.
대에이전트 시대에는 의사결정의 입구가 바뀐다
Aggregator의 힘이 최종 사용자 관계에서 나온다면, 대에이전트 시대의 핵심 질문은 단순하다.
사용자는 결정을 내릴 때 누구에게 가장 먼저 말하는가.
과거에는 Google에 검색어를 입력했다. 상품이라면 Amazon을 열었고, 숙소라면 여행 플랫폼에 들어갔다. 앞으로 사용자는 자신의 일정, 예산, 취향, 과거 구매, 회사 정책을 아는 Agent에게 목표만 말할 수 있다. Agent는 여러 플랫폼과 공급자를 넘나들며 결과를 만든다.
이때 Agent는 기존 Aggregator의 또 다른 유입 채널이 아니다. 여러 Aggregator를 아래에 두고 선택하는 Aggregator 위의 Aggregator가 될 가능성이 있다.
호텔 플랫폼이 수백만 개 객실을 모아도 Agent가 공식 호텔 사이트, 여러 예약 플랫폼, 멤버십 가격을 동시에 비교한다면 사용자는 호텔 플랫폼과 직접 관계를 맺지 않는다.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방대한 상품과 리뷰를 보유해도 Agent가 여러 상점의 가격, 배송, 반품 조건을 대신 판단한다면 상품 목록 화면을 방문할 이유가 줄어든다.
한때 공급자를 모듈화했던 Aggregator가 이제 상위 Agent에게 호출되는 공급자로 모듈화될 수 있다. Google, Amazon, Uber, Airbnb가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더 불편한 가능성이다. 이들이 보유한 재고, 데이터, 결제, 물류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사용자와의 직접 관계는 Agent가 가져갈 수 있다.
인터넷 시대의 승자가 “어디서 찾을 것인가”를 장악했다면, Agent 시대의 승자는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를 장악한다.
그 차이는 인터페이스의 변화보다 훨씬 크다. 검색창을 대화창으로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시장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통합 지점이 이동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통합 지점은 관심이 아니라 권한이다
기존 Aggregator는 사용자의 관심과 데이터를 통합했다. Google은 검색 의도와 웹페이지를 연결했고, Facebook은 관계와 관심사를 광고 재고에 연결했다. Amazon은 결제정보와 구매 이력, 물류를 하나의 계정에 묶었다.
Agent는 여기에 새로운 자산을 더한다. 사용자를 대신해 행동할 수 있는 권한이다.
좋은 Agent는 사용자가 좋아하는 브랜드만 아는 것이 아니다. 이번 달 예산, 다음 주 일정, 회사 출장 규정, 알레르기, 이미 구독 중인 서비스, 과거에 반품한 이유까지 함께 고려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캘린더를 바꾸고, 이메일을 보내고, 결제를 요청하고, 다른 시스템에 결과를 기록할 수 있다.
이 관계가 깊어질수록 전환비용도 커진다. 검색엔진을 바꾸면 검색 기록 일부를 잃지만, Agent를 바꾸면 나의 목표와 선호, 반복 업무의 맥락, 연결된 도구, 승인 규칙을 다시 가르쳐야 할 수 있다. 에이전트의 메모리와 권한이 쌓인다는 것은 편리함이 늘어난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잠금 효과가 생긴다는 뜻이다.
따라서 대에이전트 시대의 독점력은 가장 많은 콘텐츠를 보여주는 능력보다 가장 많은 인간에게 가장 넓은 범위의 판단과 행동을 위임받는 능력에서 나올 수 있다.
사용자의 판단과 행동을 위임받은 Agent가 새로운 통합 지점이 된다면, 공급자는 더 이상 인간의 화면에서만 경쟁할 수 없다. 이제 Aggregation의 반대편에서 누가 자신을 선택하는지부터 달라진다.
공급자는 인간이 아니라 Agent에게 선택받아야 한다
사용자 관계가 Agent로 이동하면 공급자의 경쟁 방식도 달라진다. 지금까지 기업은 사람에게 발견되기 위해 웹페이지를 만들고, 검색 결과를 최적화하고, 광고를 사고, 매력적인 상품 사진을 준비했다. Agent도 일부는 같은 정보를 읽겠지만 선택 기준은 다를 수 있다.
사람에게는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이라는 문구가 먹힐 수 있다. Agent에게는 재고가 실제로 있는지, 총비용이 얼마인지, 배송일을 지킬 수 있는지, 반품 조건이 사용자의 제약과 맞는지가 더 중요하다. 사람이 멋진 랜딩페이지에서 넘어가던 모호함을 Agent는 비교 불가능한 정보로 처리할 수 있다.
그래서 공급자는 두 종류의 고객을 상대하게 된다. 욕망과 이야기에 반응하는 인간, 그리고 조건·정책·증거를 읽고 행동하는 Agent다. 전자는 브랜드를 요구하고, 후자는 구조화된 사실과 신뢰 가능한 실행 경로를 요구한다.
Google이 발표한 Agent2Agent(A2A)는 서로 다른 Agent가 정보를 교환하고 행동을 조정하는 공통 프로토콜을 지향한다. 이후 공개된 Universal Commerce Protocol은 발견, 구매, 구매 후 지원까지 Agent와 판매자, 결제 사업자가 공통 언어로 연결되는 상거래를 제안한다. 화면을 잘 만드는 일과 별개로, Agent가 공급자의 능력과 조건을 정확히 읽고 호출할 수 있는 층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가 충분히 진행되면 SEO의 중요한 일부도 달라진다. 검색 결과에서 클릭을 얻는 경쟁만이 아니라, Agent가 목표를 수행할 때 신뢰할 수 있는 후보로 불리고 거래를 끝낼 수 있는가의 경쟁이 된다. 발견 가능성, 기계가 읽을 수 있는 조건, 최신 재고, 인증된 평판, 실패했을 때의 복구가 하나의 사용자 경험이 된다.
결제가 붙는 순간 Aggregation은 행동의 이론이 된다
Agent가 추천만 할 때는 기존 검색과 차이가 작아 보일 수 있다. 추천을 받은 사람이 다시 사이트를 열고 결제한다면 최종 사용자 관계는 여전히 기존 플랫폼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Agent가 결제까지 수행하면 관계의 중심이 달라진다. 사용자는 판매자의 화면을 보지 않고도 거래를 끝낼 수 있다. 공급자는 고객을 설득하는 대신 고객의 Agent가 가진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Google의 Agent Payments Protocol(AP2)은 이 지점을 다룬다. 특히 사전에 설정한 사용자 지시에 따라 사람이 그 순간 자리에 없어도 Agent가 결제를 수행하는 구조와, 사용자가 무엇을 승인했는지 검증 가능한 기록으로 남기는 방식을 제시한다. Agent의 거래가 커질수록 편의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권한과 책임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Aggregation Theory를 정보 유통의 이론에서 행동 유통의 이론으로 확장한다. 기존 Aggregator가 수많은 공급을 한 화면에 모았다면, Agent는 수많은 공급과 도구를 하나의 위임된 행동으로 압축한다.
링크 열 개가 예약 한 건이 되고, 상품 비교표가 도착 예정인 주문 한 건이 되며, 금융상품 설명이 사용자의 위험 한도 안에서 실행된 결정 한 건이 된다. 사용자가 받는 결과물은 선택지가 아니라 완료 상태다.
그러나 모든 Agent가 Aggregator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Agent가 등장한다고 해서 모두 시장의 지배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Thompson의 원래 이론에서도 단순한 유통자는 Aggregator가 아니었다. 공급을 모으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사용자 경험을 장악하고, 사용자가 늘수록 공급이 늘며, 공급이 늘수록 경험이 좋아지는 선순환이 필요했다.
Agent도 마찬가지다. 특정 웹사이트에서 버튼을 대신 누르는 기능은 유용하지만 사용자 관계를 소유하지 못한다. 한 회사의 업무만 자동화하는 Agent는 강한 제품이 될 수 있어도 전 산업을 집계하는 Aggregator와는 다르다.
Agent Aggregator가 되려면 적어도 세 가지 고리가 필요하다.
- 위임: 사용자가 목표와 맥락, 행동 권한을 지속적으로 맡긴다.
- 도달 범위: Agent가 여러 공급자와 도구를 넘나들며 목표를 끝낼 수 있다.
- 학습 루프: 더 많은 행동이 선호와 실패 데이터를 만들고, 그 데이터가 다음 판단과 공급자 선택을 개선한다.
이 순환이 만들어지면 더 좋은 Agent가 더 많은 사용자를 부르고, 더 많은 사용자가 더 많은 공급자와 도구의 연결을 부르며, 넓어진 연결이 다시 Agent의 성공률을 높인다. Aggregation Theory의 선순환이 화면 위가 아니라 행동망 안에서 재현된다.
대리인의 충성은 누구를 향하는가
여기에는 오래된 Aggregator보다 더 위험한 문제가 있다. 사용자의 대리인인 Agent가 실제로 누구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두는가.
검색 결과의 광고는 적어도 광고라는 표시가 있다. Agent가 특정 상품을 추천하고 바로 구매까지 수행하면 추천, 광고, 수수료, 플랫폼의 자사우대가 한 문장 안에 섞일 수 있다. 사용자는 결과만 받고 어떤 후보가 제외됐는지, 어떤 경제적 이해관계가 순위에 영향을 줬는지 보지 못할 수 있다.
최종 사용자 관계가 더 강해질수록 이해상충을 숨길 힘도 커진다. 그래서 Agent 시대의 사용자 경험은 단지 더 적은 클릭이어서는 안 된다. 선택 근거, 대안, 수수료, 권한 범위, 실행 기록, 취소 가능성을 사용자가 필요할 때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편리한 Agent가 반드시 사용자의 이익에 가장 충실한 Agent는 아니다. Aggregator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적용하되, 대리인의 의무와 책임을 함께 설계하지 않으면 우리는 검색 결과의 편향보다 훨씬 보이지 않는 선택 시스템을 만들게 된다.
다음 독점은 화면이 아니라 기본 대리인에서 나온다
인터넷은 유통을 무료로 만들고 공급을 모듈화했다. Aggregator는 사용자에게 가장 가까운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그 위에 제국을 세웠다.
AI Agent는 판단과 행동의 거래비용을 낮춘다. 수십 개의 링크를 읽고 조건을 비교하고 양식을 채우고 결제하는 비용이 줄어들면, 인간은 더 많은 결정을 대리인에게 넘긴다. 그 순간 기존 Aggregator조차 Agent가 호출하는 모듈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대에이전트 시대의 핵심 경쟁은 가장 똑똑한 모델을 한 번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누가 사용자의 지속적인 위임을 얻는가, 누가 가장 넓은 공급과 도구에 도달하는가, 누가 행동 결과를 학습해 다음 결정을 더 낫게 만드는가의 경쟁이다.
2015년 Aggregation Theory의 명제는 아직 유효하다. 권력은 최종 사용자 관계를 가진 곳으로 이동한다. 다만 이제 그 관계의 의미가 달라졌다.
인터넷 시대의 Aggregator는 우리가 무엇을 볼지 정렬했다. 대에이전트 시대의 Aggregator는 우리를 대신해 무엇을 할지 결정한다.
주요 출처: Ben Thompson, Aggregation Theory; OpenAI, Introducing ChatGPT agent; Google, Announcing the Agent2Agent Protocol, Universal Commerce Protocol, Agent Payments Protocol. Agent가 기존 플랫폼 위의 Aggregator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위 자료에 명시된 전망이 아니라, Aggregation Theory를 현재의 에이전트 실행·상거래 구조에 적용한 이 글의 해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