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직무를 흐리면 회사의 칸막이도 흔들린다

에단 몰릭이 소개한 AI와 직무 경계 변화에 관한 관찰을 조직의 역할과 책임 기록이라는 관점에서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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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단 몰릭은 Procter & Gamble 연구에서 확인한 한 가지를 소개했다. AI가 직무 사이의 경계를 흐리면서, 조직도 부서별 칸막이만으로 일을 나누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는 OpenAI가 비슷한 결과를 내놓았다며 “조직의 경계가 다공성으로 변한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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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에서 “직무가 사라진다”는 결론을 바로 끌어낼 필요는 없다. 몰릭이 말한 변화는 먼저 일이 여러 직무에 걸쳐 이동한다는 데 있다. 과거에는 분석가가 자료를 만들고, 기획자가 해석하고, 관리자가 결정을 요청하는 식으로 나뉘었다면, AI를 쓰는 사람은 이 과정을 한 작업 흐름 안에서 이어 붙일 수 있다.

직무 설명서보다 작업 흐름이 먼저 보인다

AI가 문서를 요약하고, 표를 만들고, 코드를 수정하고, 이메일 초안을 쓰는 상황에서는 “이 일은 어느 직무의 것인가”라는 질문이 빠르게 낡는다. 한 사람이 자기 직무에 속한 도구만 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직무의 산출물을 받아 다음 작업에 바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조직의 경계가 다공성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부서가 없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부서 사이를 오가던 대기와 전달의 비용이 줄어든다는 뜻에 가깝다. 마케팅 팀이 데이터 팀에 분석을 요청하고 며칠을 기다리는 대신, 필요한 질문을 스스로 정리해 AI로 초안을 만들 수 있다. 개발 팀의 기술 문서도 다른 팀이 바로 읽고 질문할 수 있는 형태가 된다.

다만 이 흐름이 곧바로 조직의 생산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부서별 책임이 흐려지면 승인 권한, 데이터 접근, 최종 판단의 주체도 함께 흐려질 수 있다. “AI가 만들었다”는 사실은 책임자를 정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이 어떤 판단을 했고, 어떤 근거를 검토했는지 남겨야 하는 일이 늘어난다.

AI 도입은 도구 구매보다 역할 재설계에 가깝다

몰릭의 포스트를 실무에 적용하면 회의의 질문이 달라진다. “어느 팀에 AI를 지급할까”보다 “한 고객 요청이 들어와 해결될 때까지 어떤 직무를 통과하는가”를 먼저 그려야 한다. 그 흐름에서 AI가 초안을 만들 수 있는 지점, 사람이 승인해야 하는 지점, 다른 팀의 정보가 필요한 지점을 분리한다.

예를 들어 고객의 기술 문의가 접수되면 고객지원이 질문을 분류하고, 개발이 원인을 확인하고, 제품 팀이 반복되는 문제를 우선순위에 올린다. AI가 세 단계의 문서를 연결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장애의 심각도나 고객에게 약속할 보상처럼 조직의 책임을 바꾸는 판단까지 자동으로 넘길지는 별도의 문제다.

그래서 역할이 흐려질수록 기록의 형식은 더 선명해야 한다. 누가 요청했고, AI가 어떤 자료를 사용했고, 사람이 어디를 고쳤고, 마지막으로 누가 승인했는지를 남기면 부서 사이의 이동이 책임의 실종으로 이어지는 일을 줄일 수 있다.

AI가 직무의 경계를 흐린다는 말은 “모두가 모든 일을 하게 된다”는 뜻이 아니다. 업무가 직무명보다 작업 흐름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조직은 부서를 없애기보다, 경계를 넘는 업무를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떤 기록과 승인으로 통제할지 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