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이 질을 만든다. 단, 피드백이 있을 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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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이 질을 만든다. 단, 피드백이 있을 때만

사진 수업에서 한쪽 학생들에게는 사진 백 장을, 다른 쪽 학생들에게는 완벽한 사진 한 장을 과제로 냈다. 학기 말에 더 좋은 사진을 내놓은 쪽은 백 장을 찍은 학생들이었다. 많이 찍는 동안 구도와 빛을 시험하고, 실패를 보고, 다음 사진을 바꿨기 때문이다.

Why Trying to Be Perfect Won’t Help You Achieve Your Goals
Jerry Uelsmann의 사진 수업과 반복의 효과를 소개한 James Clear의 글

이 이야기는 흔히 도예 수업의 일화로 돌아다닌다. David Bayles와 Ted Orland의 책 Art & Fear도 도자기로 각색해 실었다. Orland가 나중에 밝힌 실제 출발점은 플로리다대학교에서 Jerry Uelsmann이 맡았던 기초 사진 수업이었다. 엄밀한 통제 실험은 아니다. 그래도 이 수업이 건드린 문제는 정확하다. 결과를 좋아지게 만든 것은 ‘많음’ 자체였을까, 많이 만드는 동안 생긴 수정이었을까.

양이 늘린 것은 작품 수보다 피드백의 횟수였다

백 장을 찍은 학생에게는 판단할 장면도 백 번 생긴다. 셔터를 너무 늦게 눌렀는지, 프레임 안에 무엇이 남았는지, 빛이 피사체를 살렸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한 장을 구상하는 학생은 머릿속에서 완성도를 높였지만, 카메라와 현실이 돌려주는 답은 적게 받았다.

연습의 단위는 결과물 하나가 아니다. 결과를 보고 다음 행동을 바꾸는 한 바퀴가 연습 한 번이다. 그래서 양은 질을 직접 생산하지 않는다. 양은 피드백을 받을 기회를 늘리고, 피드백을 반영한 다음 시도가 질을 만든다.

같은 실패를 복제하면 양은 질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일단 많이 하라’는 조언은 쉽게 망가진다. 같은 구도로 사진 백 장을 찍거나, 읽히지 않는 글을 같은 방식으로 백 편 쓰거나, 반응 없는 광고 문구의 단어만 백 번 바꾸면 생산량은 늘어도 판단은 그대로다. 실패가 다음 시도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성형 AI는 이 착각을 더 싸게 만든다. 같은 가설에서 나온 문구 백 개는 실험 백 번이 아니다. 한 번의 추측을 백 가지 문장으로 복제한 것이다. 고객이 무엇에 반응했는지 보지 않고 프롬프트만 다시 돌리면, 모델은 생산 속도를 높여도 우리의 판단을 고치지 못한다.

유효한 반복은 다음 시도를 바꾼다

글쓰기에서는 초고를 공개해 어디에서 독자가 멈추는지 본다. 코딩에서는 작은 동작을 실행해 테스트 실패와 사용자의 막힘을 읽는다. 제품에서는 기능 열 개를 한꺼번에 만들기보다 약속 하나를 내놓고 누가 돈이나 시간을 내는지 확인한다. 분야는 달라도 반복의 구조는 같다.

만든다 → 본다 → 하나를 바꾼다 → 다시 만든다.

‘본다’가 빠지면 생산이고, ‘바꾼다’가 빠지면 복제다. 피드백도 막연하면 소용없다. 이번 시도에서 무엇을 확인할지 정해야 다음 결과와 비교할 수 있다. 제목을 바꿨다면 클릭을 보고, 도입부를 바꿨다면 이탈을 보고, 결제 문구를 바꿨다면 구매를 본다. 한 번에 하나씩 바꿔야 무엇이 결과를 움직였는지도 남는다.

완벽한 첫 결과보다 실패를 기억하는 다음 결과

Jeff Atwood는 이 일화를 소프트웨어에 옮겨, 이론만 쌓기보다 실제로 많이 만들며 실수에서 배우라고 썼다. 다만 ‘많이’의 기준을 코드 줄 수나 배포 횟수로 잡으면 다시 함정에 빠진다. 어제의 실패가 오늘의 설계에 남았는지가 더 정확한 기준이다.

첫 결과가 형편없어도 괜찮다는 말은 품질을 포기하자는 뜻이 아니다. 품질 판단을 머릿속에서 끝내지 말자는 뜻이다. 열 번째 결과가 첫 번째 결과의 실패를 기억하고 있다면 양은 질로 이동하고 있다. 기억하지 못한다면 백 번째 결과도 첫 번째 결과의 복사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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