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은 표준일 때 더 오래 간다
Gmail에서 Fastmail로 옮겨가며 본 메일의 본질은 앱이 아니라 열린 표준과 운영 분리다.
메일은 단순한 수신함이 아니라 계정, 결제, 복구, 사업 운영이 만나는 신뢰 인프라다.
Gmail을 오래 썼다. 크게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니다. 빠르고, 검색 잘 되고, 스팸도 잘 잡는다. 대부분의 서비스가 Google 로그인도 지원하니 그냥 편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Gmail 주소 하나가 너무 많은 것을 떠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 연락, 서비스 가입, 영수증, 뉴스레터, 도메인, 서버 알림, 결제, 일정, 복구 메일이 전부 한 주소로 들어왔다. 메일함이 지저분해진 것도 문제지만, 더 신경 쓰인 건 맥락이 전부 섞인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Fastmail을 써보기로 했다.
Gmail을 버리겠다는 대단한 선언은 아니다. Google 계정은 계속 쓸 것이다. 다만 개인 생활과 작은 사업 운영에서 쓰는 기본 메일은 Gmail 말고 다른 곳으로 옮겨보고 싶었다.
왜 Fastmail인가
Fastmail이 특별히 화려한 서비스는 아니다. 오히려 조금 평범하다. 메일, 캘린더, 연락처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다. 광고로 돌아가는 서비스가 아니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제일 큰 이유는 따로 있다. 표준을 잘 지원한다는 점이다.
Fastmail은 메일을 IMAP, POP, SMTP, JMAP으로 다룰 수 있고, 연락처는 CardDAV나 JMAP으로, 캘린더는 CalDAV로 접근할 수 있다. 즉 Fastmail 앱 안에서만 살아야 하는 구조가 아니다. 다른 메일 클라이언트를 붙일 수 있고, 필요하면 내가 만든 스크립트나 도구도 붙일 수 있다.
이게 나한테는 크다.
요즘 내가 원하는 건 예쁜 메일 앱 하나가 아니다. 메일, 캘린더, 연락처를 내가 쓰는 다른 도구들과 연결할 수 있는 바닥이다. 사람인 나도 읽기 쉽고, 나중에 에이전트도 읽고 처리하기 쉬운 구조가 필요하다.
메일함을 자동화한다고 할 때 제일 별로인 방식은 화면을 억지로 눌러가며 읽는 것이다. 가능하면 표준 프로토콜이나 API로 읽고, 분류하고, 필요한 것만 작업이나 일정으로 바꾸는 편이 낫다. Fastmail은 그쪽으로 생각하기가 편하다.
그 다음은 컨트롤이다.
Gmail도 API가 있고 자동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Gmail을 쓰다 보면 Google 계정 전체의 일부로 생각하게 된다. Fastmail은 조금 더 단순하게 느껴진다. 메일 서비스에 돈을 내고, 내 도메인을 붙이고, 표준으로 열어두고, 필요한 클라이언트와 자동화를 내가 고르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리더블함이다.
이건 UI가 예쁘다는 말과 조금 다르다. 메일 주소를 용도별로 나누고, alias와 Masked Email을 쓰고, 캘린더와 연락처를 표준으로 꺼낼 수 있으면 구조가 읽힌다. 이 메일이 왜 왔는지, 어느 주소로 들어왔는지, 다음에 무엇으로 바뀌어야 하는지가 더 잘 보인다.
hello@, receipts@, newsletter@, clients@처럼 입구를 나눌 수 있다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주소 나누기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나중에 사람과 에이전트가 같이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메일함을 만드는 일에 가깝다.
Gmail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값의 문제
Gmail이 나쁜 서비스라서 옮기는 건 아니다. 오히려 Gmail은 너무 잘 만든 서비스다. 문제는 너무 오래 기본값으로 두다 보면, 내가 메일을 어떻게 쓰고 싶은지 생각하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뉴스레터 주소와 은행 주소가 같을 필요는 없다. 개인 친구에게 주는 주소와 실험용 SaaS 가입 주소도 같을 필요가 없다. 고객 문의와 쇼핑몰 영수증이 같은 입구로 들어올 필요도 없다.
그런데 Gmail 주소 하나로 오래 살면 이걸 잘 안 나누게 된다. 그냥 다 들어오게 두고, 나중에 검색하거나 보관하거나 삭제한다.
나는 그 방식을 조금 바꿔보고 싶다.
메일을 더 열심히 관리하려는 게 아니라, 애초에 들어오는 길을 나누고 싶다. 그래야 중요한 메일이 덜 묻히고, 나중에 에이전트가 읽어도 맥락을 잃지 않는다.
솔로프리너에게 메일은 꽤 중요하다
혼자 일하면 메일이 생각보다 많은 역할을 한다. 문의가 오고, 결제 알림이 오고, 도메인 갱신 메일이 오고, 미팅 초대가 오고, 영수증이 쌓인다. 작은 사업에서는 메일함이 거의 운영 로그처럼 된다.
그래서 메일 주소를 어떻게 나누고, 어떤 메일을 어디로 보내고, 어떤 알림을 일정이나 작업으로 바꿀지 정하는 일이 꽤 중요하다.
Fastmail을 쓰면 이걸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Gmail 하나에 전부 쌓아두는 방식보다는 내 운영 방식에 맞게 만들 여지가 커 보인다. 핵심은 표준, 컨트롤, 리더블함이다.
추천 링크는 아직 없다
원래는 이 글 끝에 Fastmail 추천 링크를 붙이려고 했다.
Fastmail 추천 링크로 가입하면 가입자는 첫 1년 할인을 받고, 추천한 사람은 조건을 충족하면 작은 보상을 받는다. 이런 구조 자체는 괜찮다고 본다. 내가 실제로 쓰는 서비스라면 추천 링크를 붙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대신 고지는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런데 확인해보니 지금 내 Fastmail 계정은 아직 trial 상태라 추천 링크가 나오지 않는다. Fastmail은 유료 계정의 admin에게만 referral link를 열어준다.
그래서 이 글에는 추천 링크가 없다.
조금 김빠지는 결론이지만, 오히려 지금 올리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추천 링크가 생겨서 쓰는 글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 Gmail을 기본값에서 내려놓고 Fastmail을 써보려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유료 전환을 하고 추천 링크가 생기면 이 문단을 업데이트할 것이다. 지금 바로 볼 사람은 그냥 Fastmail 공식 사이트에서 보면 된다. 이 링크는 추천 링크가 아니다.
일단 옮겨본다
아직 결론을 내릴 단계는 아니다. 써보면서 불편한 점도 나올 것이다. Gmail보다 불편한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이 정도 판단이면 충분하다.
내 기본 메일 주소를 조금 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쪽으로 옮기고 싶다. 개인 생활, 영수증, 뉴스레터, 고객 문의, 자동화용 주소를 나눠보고 싶다. 그리고 나중에 에이전트를 붙이더라도 화면 자동화가 아니라 표준으로 읽고 쓰는 쪽에 두고 싶다.
그래서 Fastmail을 써보기로 했다.
거창한 전환이라기보다, 메일함을 다시 정리해보는 작은 시작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