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향을 알아봐 달라는 마음이 제품을 망친다
취향은 제품의 시작점일 수 있지만 고객 문제와 검증을 대신할 수는 없다.
취향은 좋은 출발점이지만 시장 검증의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위험한 것은 취향 자체가 아니라, 고객이 그 취향을 알아봐 주길 기다리는 태도다.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 안에서 제일 위험한 것은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히는 취향 자체가 위험한 게 아니다. 내 취향을 누군가 알아봐 줬으면 하는 마음이 위험하다.
이 마음은 꽤 그럴듯한 얼굴을 하고 온다. 나는 아무거나 만들고 싶지 않다. 싸구려로 팔고 싶지 않다. 남들이 다 하는 걸 따라 하고 싶지 않다. 내 기준이 있고, 내 감각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결이 있다.
여기까지는 좋다. 취향은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내 취향을 기준으로 무언가를 만들다 보면, 어느 순간 고객보다 내가 앞에 온다. 고객이 무엇 때문에 돈을 내는지보다, 사람들이 내 감각을 알아봐 주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제품을 팔고 싶은 건지, 내 안목을 인정받고 싶은 건지 흐려진다.
이때부터 사업은 이상해진다.
이름을 고르는 데 오래 걸린다. 문장을 다듬는 데 오래 걸린다. 무드와 톤을 잡는 데 오래 걸린다. 그런데 정작 고객이 왜 이걸 사야 하는지에는 말이 짧아진다.
“이 감각을 알아보는 사람은 알아볼 거야.”
“이 결을 좋아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야.”
“이 정도 퀄리티면 사람들이 반응할 거야.”
위험한 말들이다.
왜냐하면 이 말들은 고객을 말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나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객의 문제, 고객의 상황, 고객의 지불 이유가 아니라 내 취향의 정당성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에 가깝다.
취향은 검증이 아니다. 좋아요도 검증이 아니다. 멋있다는 말도 검증이 아니다.
진짜 검증은 훨씬 차갑다. 누가 돈을 내는가. 왜 지금 내는가. 다시 살 이유가 있는가. 대체재보다 비싸도 고를 이유가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취향은 자주 힘을 잃는다.
물론 취향은 중요하다. 취향 없는 제품은 쉽게 흐려진다. 하지만 취향은 고객에게 도착해야 힘이 생긴다. 내가 좋아하는 색, 문장, 질감, 세계가 고객에게 어떤 선택의 이유가 되는지 설명되지 않으면, 그것은 사업의 자산이 아니라 자기만족에 가깝다.
가장 위험한 순간은 사람들이 내 취향을 칭찬할 때다.
“느낌 좋다.”
“너답다.”
“감각 있다.”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 많을 것 같다.”
이 말들은 기분이 좋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이 말들은 나를 앞으로 가게 만들지만, 꼭 사업을 앞으로 가게 만들지는 않는다. 관객의 박수와 고객의 결제는 다르다. 박수는 내가 멋있어 보였다는 신호일 수 있지만, 결제는 자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선택이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이 질문을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고객의 문제를 풀고 싶은가, 아니면 내 취향을 알아봐 줄 사람을 찾고 있는가.
둘은 처음에 비슷하게 생겼다. 하지만 끝은 완전히 다르다.
앞의 것은 사업이 될 수 있고, 뒤의 것은 전시가 되기 쉽다. 앞의 것은 고객을 향하고, 뒤의 것은 나를 향한다. 앞의 것은 가격과 유통과 반복 구매를 견디고, 뒤의 것은 반응과 칭찬 앞에서 멈춘다.
내 취향을 알아봐 줬으면 하는 마음은 인간적이다. 누구나 자기 안목을 인정받고 싶다. 문제는 그 마음이 사업의 얼굴을 하고 들어오는 순간이다. 그러면 인정욕구가 전략처럼 보이고, 자기표현이 시장성처럼 보이고, 취향의 일관성이 사업의 진전처럼 보인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사업은 내 취향을 설명하는 일이 아니다. 고객이 돈을 낼 이유를 만드는 일이다.
취향은 출발점일 수 있다.
하지만 결제만이 검증이다.